미술가별 작품소개 -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들>
01. 성 베드로 광장
성 베드로 광장(이탈리아어: Piazza San Pietro)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바로 앞에 조성된 광장이다. 광장은 로마시의 보르고 리오네 구역과 동쪽으로 접경을 이루며, 최대 30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성 베드로 광장의 설계자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이다.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설계하면서, 가톨릭교회가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고자 했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머리로 두고, 반원형의 회랑 두 개를 팔로 묘사함으로써 성 베드로 대성전이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성 베드로 광장 양편에 각각 네 줄로 늘어선 토스카나식 기둥 284개와 벽에서 돌출된 기둥 88개로 이루어진 베르니니의 회랑은 165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667년에 완공되었다. 16m 높이의 원기둥꼴 대리석 기둥 위에 있는 140개의 성인상은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조각한 것이다
02. 스칼라 레지아(바티칸)
스칼라 레지아(라틴어: Scala Regia, 왕의 계단)는 바티칸 시국에 있는 일련의 계단으로 바티칸으로 공식적으로 들어가려면 올라가야 하는 한 부분이다. 스칼라 레지아는 바티칸 궁전을 성 베드로 대성전과 연결하려고 16세기 초에 소 안토니오 다 상갈로에 의해 지어졌으며, 1663년부터 1666년에 걸쳐 잔 로렌초 베르니니에 의해 재건되었다.
계단이 있는 장소는 대성전과 궁전 사이의 비교적 폭이 좁고 미끄러져 내려가며, 불규칙적으로 모인 벽들로 이루어져 있다. 베르니니는 이곳을 통해 바티칸에 들어간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수많은 전형적인 연출 기법과 세련된 바로크 효과를 사용하였다. 계단 부분은 정확하게 다량의 아치 천장이 있는 열주(列柱)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끝부분에서 멀리 내다보면 폭이 점점 좁아져서 넓이가 넓은 것처럼 과장되게 보인다. 조망의 시작점에 있는 아치 위로 교황 알렉산데르 7세의 문장이 있으며, 문장 좌우 측면에 두 명의 천사상이 있다.
마지막으로 베르니니는 계단의 기반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의 기마상을 놓았다. 이 기마상은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비오 다리 전투를 치르기 전에 테베레강을 지나 로마 북쪽 삭사 루브르에 다다랐을 즈음에 ‘이 표시로 이기리라(In Hoc Signo Vinces)’라는 라틴어 글귀와 함께 십자가를 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이 글귀는 콘스탄티누스 기마상과 인접한 스칼라 레지아 바로 위에 있는 창문 밑에 있는 십자가 왼편에 펼쳐진 리본에 새겨져 있다. 황제들과 기타 군주들은 교황에게 문안 인사를 마치고 스칼라 레지아를 내려오면서 글귀와 더불어 창문을 통해 빛이 내리쬐는 것을 보고 콘스탄티누스가 목격한 환시를 떠올리며 십자가를 따르겠다는 맹세를 상기하곤 하였다. 베르니니의 콘스탄티누스 상에서 콘스탄티누스는 외경심에 사로잡혀 있고 그가 탄 말은 뒷다리로 서 있다. 이는 콘스탄티누스가 오직 그리스도의 힘을 통해서만 자신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줄리오 로마노가 그렸으며 ‘콘스탄티누스의 방’에 있는 프레스코 벽화인 밀비오 다리 전투와 같은 바티칸의 삽화와 성 베드로 대성전에 있는 알가르디가 돋을새김한 아틸라와 교황과 같은 대리석 부조에서 종종 되풀이되었다.
나중에 교황 클레멘스 9세는 콘스탄티누스 기마상의 짝으로서 성 베드로 대성전의 주랑 현관에 샤를마뉴 조각상을 세웠다.
03. 나보나 광장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광장이다. 테베레강과 코르소 거리 사이에 위치해있다. 이 광장의 역사는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일대는 1세기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만든 황제 도미티아누스 경기장(Circo dell'imperatore Domiziano)이 있던 곳으로, 경기장의 관중석 계단이 있던 그 자리에 오늘날 광장을 빙 둘러 감싸고 있는 건물들이 세워진 셈이다. 이 경기장은 모형 해상전투, 대중을 위한 놀이 등의 행사가 거행되던 일종의 매머드 스포츠 복합시설이었다. 나중에는 이것이 파괴되어 흔적이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 중세기 동안에는 민중들의 축제 행사가 이곳에서 계속 열렸고, 19세기에도 떠돌이 광대들이 무더운 8월의 휴일에 우스갯거리를 들고나와 대중을 즐겁게 하였다.
현재의 직사각형 형태로 광장이 건축된 것은 17~18세기의 일인데, 그 뒤로 변형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지롤라모 라이날디에게 명령하여 팜필리 궁전을 재건축함으로써 그때까지 버려졌던 광장을 재정비하였다. 교황은 성녀 아녜스가 순교했던 그 자리에 성 아녜스 성당도 짓도록 하였다. 중세 때에도 이미 이 경기장 성벽 위에 첫 번째 성당이 세워졌다가 나중에 파괴되었는데 그 잔해 위에 건축가 보로미니가 새 성당을 건축하였다.
나보나 광장에는 바로크풍의 분수가 셋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광장 가운데 자리 잡은 4대 강 분수(Fontana dei Quattro Fiumi)로서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설계한 것이다. 네 사람의 비유적 형상은 나일강, 갠지스강, 다뉴브강, 라플라타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04. 성 테레사의 법열
성 테레사의 법열(Ecstasy of Saint Teresa)은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혹은 Giovanni Lorenzo Bernini)의 작품으로,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에 있다. 1647년부터 1652년까지에 걸쳐 제작하였다
05.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토스
《잠자는 헤르마프로디토스》(Sleeping Hermaphroditus)는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잠자는 모습을 등신대로 조각한 대리석 조각이다. 고대적 물건이라는 것은 알려졌지만,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1620년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침대를 조각해 그 위에 올려놓은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현재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06. 프로세르피나의 강간
프로세르피나의 강간(이탈리아어: Ratto di Proserpina)은 더 정확하게는 프로세르피나의 납치[1]로 번역되며, 이탈리아 예술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대형 바로크 대리석 그룹 조각이다. 1621년에서 1622년 사이에 초기 단계로 베르니니가 겨우 23세였을 때 완성되었다. 이 그룹은 프로세르피나의 납치를 묘사하고 있으며, 프로세르피나는 플루토 신에게 붙잡혀 지하 세계로 끌려간다. [2][3] 프로세르피나를 높이 들고 있는 플루토와 프로세르피나를 운반하는 지하 세계로의 경계를 상징하는 케르베로스가 특징이다.
쉬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은 조각품을 의뢰하여 새로 임명된 추기경인 루도비코 루도비시에게 호의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조각품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프로세르피나의 신화를 묘사하기 위한 선택은 그즈음 교황 바오로 5세의 사망과 루도비코의 권한 부여와 관련될 수 있다. 베르니니는 조각을 위해 잠볼로냐와 안니발레 카라치로부터 큰 영감을 얻었으며, 이 조각은 준비 재료가 남아 있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프로세르피나의 강간은 희귀한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원래 마페오 바르베리니의 시가 있는 이후 파괴된 받침대에 놓였다. 대리석이 살과 같은 다른 재료를 모방하기 때문에 현실감이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의 디테일은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한 방울의 눈물은 프로세르피나의 얼굴에 표현력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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